떠 남 과 만 남/포토산행기

경남남해 <망운산/괴음산/송등산/호구산> 남해지맥 제2구간 산행

심헌 2013. 4. 21. 11:14

<2013.04.20(토) 경남남해 망운산/괴음산/송등산/호구산 산행사진입니다>

 

◈ 산행코스및거리 : 현촌마을>망운산>관대봉>남산>정원묘지>수치산>연죽산>팽현고개>떡고개>괴음산>암릉>송등산>호구산>앵강고개

GPS상 산행거리  20.3 Km  , 총 8 시간 54 분 소요 (중식,휴식시간 포함)

 

- 산행코스 지도입니다 -

 

 

 

 

운무에 허우적거리고 해무속의 산길을 걷다 

 

운명의 장난일까?  아니면 하늘의 요술일까?  그도 아니면 산신령의 심술일까? 남해지맥 제2구간 종주산행의 날씨를 두고 하는 표현입니다.

지난 2주 전 이 구간의 산행을 준비하던 중 폭우와 강풍이 동반되는 날씨로 인해 부득이하게 산행이 취소되어 오늘 그 구간을 다시 타게 되었는데,

오늘 날씨 역시도 몇일 전까지만 해도 맑은 날씨에 구름만 듬성듬성 끼는 날씨가 예보되어 기대반 설레임반으로 기다렸지만 결과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날씨는 비내리는 궂은 날이 아니라, 한랭전선이 내려와 차가운 바람에 눈발이 날리고 4월 중순의 날씨로는 기록까지 갱신하는 상황입니다.

계절은 만춘지절에 들고 있고 새봄을 알려왔던 목련은 이미 지고 진달래도 져가고 있으며 이젠 철쭉이 그 만춘의 봄을 이어가려 하는 상황인데,

싸락눈과 진눈깨비로 무장한 찬바람은 철쭉의 꽃망울을 얼게할 만큼 기온이 떨어져 올해의 철쭉을 얼어터진 것을 보는게 아닌가 할 정도입니다.

 

산행은 조망이 함께해야 하고 오랜 시간을 오르락내리락 걸어야 하는 맥산행에 있어서의 날씨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산행을 항시 꿈꾸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먹는 것 만큼이나 중요하고, 또 챙기고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날씨이고 기상 상황인 것입니다.

산행이 재미있고 지루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산길과 숲길 좌우로 펼쳐지는 그림같은 조망이 있어서이고 그 조망은 감동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금 시작해 걷고있는 남해지맥은 섬산행의 맥길이고, 섬산행 최고의 자랑은 바다와 어우러져 있는 섬들이 펼치는 비단같은 그림입니다.

그런 비경들이 펼치지는 것을 보며 맥길을 걷는 것이 섬산행의 핵심인데 날씨가 이를 받져주지 않는 섬산행이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좌우에 펼쳐지는 것이 하나도 없는 오직 앞만 보며 길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맥길을 걸었다는 단순한 의미 밖에 남지 않을 산행인 것입니다.

 

남해지맥 제2간을 걸었던 오늘의 산행은 아무 것도 바라볼 수 없는 답답함과 갑갑함 속에서 지루한 시간을 걸어야 했던 구간이었습니다.

운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산봉들을 부여잡고 하소연과 토로를 토해봤자 죄없는 산봉과 산길이 내게 전하는 몸짓이 과연 무엇이었겠습니까.

'성찰하는 마음으로 길을 걷고, 도 닦는 기분으로 그 길을 우직하게 걸어가라'고 하는 자연이 던져주는 무언의 메아리소리 밖에 없었습니다.

 

남해의 진산 '망운산'에서 바라보는 일망무제의 풍광도 없었으며, '호구산' 봉수대에서 바라보는 일망무제의 풍광 또한 물거품이었습니다.

오직 보이는 것이라곤 점령군처럼 산과 바다를 집어삼킨 운무와 해무만이 이우주공간의 주인처럼 행세를 하고 있는 무법천지였습니다.

다행이라면 호구산 정상에서 잠시 동안 쉬고 있을 때 해무 속을 열어주었던 앵강만의 풍경이었고, 설흘산과 응봉산이 건네오는 위로였습니다.

 

하지만 자연이 던져주는 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를 즐기면서 길을 걸을 때 알 수 없는 것들이 지배함을 느꼈습니다.

비가 내렸으니 촉촉함과 연록의 싱그러움이 배인 숲길을 만났고, 이 계절에 만날 수 없는 봄속의 진눈깨비 흩날림을 맛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뿌엿함이 산정을 지배한 것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마음으로 뭔가를 그려내고 읽어낼 수 있는 심안력을 키우는 일들이겠죠.

 

그것들이 오늘 해무속을 걸으며 사유한 일들이었고, 보이지 않아도 그려보려 했고 또한 열심히 새기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피해갈 수 없고 운명일 수 밖에 없는 날씨속의 제2구간의 산행은 보이지 않는 만큼이나 아주 멀고도 긴거리를 걸었던 하루였습니다.

짧은 하루였지만 돌아보면 언제나 그립고 아쉬운 것이 산행입니다. 그래서 남는 여운 또한 어쩌면 더 오래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봅니다. 아무 것도 없던 그 길에서 담아왔고 남기고 싶은 것들이 어떤 것인지 되돌아보며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합니다.

운무와 해무가 온통 지배했던 텅빈 공간에 남길 수 있는 것이라면 포토산행이라는 이름의 '텅빈 충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다시 온다면 오늘의 2구간은 맑은 날 다시한번 걸어볼까 하는 희망을 가지면서 포토산행의 흔적을 따라 다시 걷습니다.  

   

 

 

 

남해지맥 종주 1구간의 날머리이자, 제2구간의 들머리가 되는 <현촌마을> 이곳에서부터 오늘 다시 긴 거리의 산행이 시작된다.

 

일기예보가 있었던 만큼 산행이 시작되자마자 빗방울은 순록의 잎사귀를 차분히 적시기 시작하고~~~ 

 

얼마나 많은 비가 내릴지 걱정되는 가운데 산행의 발걸음은 초반부터 무거움으로 다가온다.

 

내리는 빗방울 소리는 초반부터 시작되는 된비알의 오름길과 함께 이중고의 힘듦으로 발길을 짓누르지만~~~

 

한발 두발 내딛은 발걸음은 어느 새 망운산 고지를 눈 앞에 둔 산허리 임도의 철쭉단지 군락지를 알리는 이곳에 올라선다.

 

그런데 간간히 뿌리던 빗방울은 이곳에서부터 진눈깨비로 바뀌고 바람까지 불어 몹시 차갑다.

 

새봄이 와 목련은 이미 졌고 진달래도 져가고 이제는 철쭉이 만춘을 이어가려 하는데 난데없는 차가운 날씨가 철쭉의 꽃망울을 얼게한다. 

 

그러다 올라선 남해의 진산인 <망운산>의 정상, 한치 앞을 바라다보기 힘들 만큼의 운무와 해무가 산정을 점령했다.

 

망운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사방팔방은 일망무제의 조망터이지만, 오늘은 보다시피 아무 것도 없이 모든 것이 새하얗다.

 

난데없이 날아온 한랭전선의 차가운 눈바람은 마지막 봄을 남기려는 진달래꽃에게는 나락으로 향하는 절망의 날이 되었고~~~

 

수리봉과 관대봉이 갈리는 이곳의 바위군락들도 옹기종기 서로 껴앉은 채 모진 찬바람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앉았다.

 

누가 이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4월의 오늘 날씨는 사나움으로 무장해 이 길에 버티고 서있다. 

 

날씨만 청명했더라면 이 길을 걷는 많은 산님들로부터 탄성을 받을 만큼의 부러운 조망터 역할을 했을 <관대봉>이었겠지만~~~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 오늘의 관봉은 찬밥신세가 되어 산님들은 그냥 이렇게 스쳐가는 꼴이 되었다. 

 

관대봉을 내려선 지맥길은 산림욕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버리고 팽현고개를 향한 길을 타면서 촉촉한 평탄의 숲길을 즐긴다. 

 

그리고 이 길의 어느 모퉁이에 앉아 빗속의 오찬을 끝냈고, 다시 순록의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아름다운 숲길을 이어간다. 

 

계절은 참으로 신비하다. 긴 겨울을 숨죽이고 있던 나목의 텅빈 길이 이렇게 충만함의 빛깔로 물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로운가. 

 

그 숲길을 벗어나니 잘 포장된 도로와 앞서갔던 산님들이 팔각정의 쉼터를 골라 비를 피한 오찬을 즐기고 있고~~~

 

비를 맞으며 이미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묘지정원으로 꾸며진 이곳을 지나 수치산으로 발길을 빠르게 옮겨간다.

 

수치산을 넘고 연죽산을 향하는 길목에서 다시 만나는 묘지정원의 고갯길, 이 길을 건너 오르면 곧바로 연죽산을 넘게되고~~~

 

연죽산을 빠르게 통과하면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팽현고개>에 내려선다.

 

우중산행인 관계로 함께했던 일부의 산님들은 이 팽현고개를 끝으로 장도의 산길을 포기하긴 했지만~~~

 

'중도에 포기란 없다'라는 산행철학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다시 지맥길을 이어간다. 팽현고개를 지나다 되돌아본 공사 중인 현장의 모습.

 

맥길산행은 멀고 지루하고 힘들기 때문에 중도포기의 유혹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이런 소담스런 숲길이 기다리고 있음에 종주산행의 임무랄까 사명감을 놓을 수는 없다.

 

맥산행의 길에선 자연의 많은 것들과도 만난다. 오늘은 요즘세상에서 구경하기 힘든 큰 키로 자란 밀밭도 지나고~~~ 

 

그러다 <떡고개>를 지나고 해무속에 갖힌 괴음산을 향한 본격적인 긴 시간의 오름길이 저 연록의 숲길에서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는 비에 젖은 이런 길을 좋아한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먼지가 일지 않는 이런 길이 아주 좋다고 했다.

 

운무에 갖히고 해무에 갖힌 오늘의 숲길이지만, 숲길을 걷는 사람들의 생각을 통해 어쩌면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지도~~~

 

어디쯤인지 분간이 되지 않지만 다시 산중턱의 어느 임도의 끝자락에서 괴음산을 향한 가파른 길은 다시 시작된다.  

 

날이 좋으면 쉬어가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도 좋을 곳인데도 이렇게 그냥 스쳐가야 한다는 것이 왠지 서글프고 갑갑하다.

 

사방이 보이지 않으니 그 답답함 속에서도 발길만을 따르다 보니 어느 새 올라선 곳이 <괴음산>이고~~~

 

주변의 산세와 어울려 아름다운 암릉길을 만들어 낼 길이지만 해무는 그런 모든 아름다움을 이 뿌엿함속에다 감추어 버렸다.

 

산행의 의미는 조망이라고 했다. 그러나 조망이 없는 오늘의 이 모습에 대한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답답함과 갑갑함 속에 다시 <송등산>을 넘어선다.

 

여전히 주변은 오리무중이고, 일기예보대로라면 오후 3시를 넘기면 날이 갤 것이라고 했는데 하늘은 별로 열릴 조짐은 없다.

 

길은 지루하고 하루의 해는 빨리 흐르고 있건만 아직 남은 산봉 하나는 여전히 오리무중 속에서 이 길을 오르고 있는 우리를 비웃고 있을까?

 

자연의 힘은 이렇게 대단히 강하다. 바람 한점 불면 사라져 버릴 안개이지만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음에 초라함은 무게를 더한다.

 

그래도 희망은 보인다. 나타나지도 않을 것 같던 호구산이 1백미터 전방에 있다는 것에 발길에 힘이 실리는 듯 하다.

 

험진 구간을 올라서니 오늘 산행의 마지막 산봉인 <호구산>의 봉수대가 해무속에서도 우뚝하다.

 

그리고 납산이라고 하는 호구산의 표지석에서 작은 흔적들 하나는 남기고~~~

 

마지막 원기를 보충하기 위해 배낭 속에 남은 먹거리를 꺼내놓고 허기진 배를 조금이나마 채우는 배려들을 한다.

 

날이 맑으면 호구산의 동쪽으로 펼쳐질 이런 조망이 있겠지만, 오늘은 이 조망판에 새겨진 사진으로 위안을 삼을 수 밖에 없겠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지는 않았는지 해질녁의 이 시간에서야 앵강만의 풍경을 이렇게 안겨주신다. 

 

예정된 하산시간을 넘긴지 오래되어 하산 발길을 빠르게 서두른다.

 

하지만 호구산을 내려서는 길이 만만치가 않아 빨리 내려설 수가 없다. 날씨가 좋았다면 여기서 보는 풍광도 탄성이 일겠건만~~~

 

그래도 푸른 하늘은 열리지 않았지만 이런 풍광을 안겨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고개를 돌려 바라본 남해지맥 제3구간의 모습이지만 해무는 그것까지는 끝까지 풀어주지 않아 아쉽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하늘의 뜻이고 운명인 것을~~~

 

이제 임도를 만나면서 호구산의 가파른 내리막길을 끝낸다. 하지만~~~ 가야할 길은 더 남았다.

 

여기서 앵강고개까지는 2.2Km의 거리.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심하게 오르내리는 길이 아니라는 점이고~~~

 

해가 저물어 어둡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풍경을 조금이나마 바라볼 수 있는 조망터가 있어 오늘 하루의 수고스런 산행의 위안을 던져준다. 

 

마지막 남은 능선을 남겨두고서 되돌아보는 지나온 풍경. 호구산의 산정은 아직도 해무가 감싸고 있지만 이런 산세라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고개를 동쪽으로 돌려본다. 창선도의 최고봉인 대방산도 해무에 갖혀있긴 마찬가지이다.

 

이제 오늘 산행의 종착지가 되는 앵강고개에 내려선다.

 

그러나 조금 더 가야 한단다. 차가 머무르고 있는 주차장을 가기 위해선 이 길을 따라 좌측의 산봉을 또다시 넘어야 한다는데~~~

 

넘어서니 오직 우리를 위해 비워 놓은 듯, 타고갈 작은 버스가 하루를 지치고 내려온 우리들을 마중해 있는 것을 보면서 오늘 긴 산행을 끝낸다.

 

이렇게 멀고도 긴 하루의 여정을 산에서 보낸 산님들 모두모두 수고하셨고, 이 포토산행기가 여러분의 삶에 활력의 기폭제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두 발로 걸어온 <대자연의 흔적>을 선물로 안겨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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